1. 목회적 돌봄과 인문학

 

내가 목회적돌봄이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백석대학교 학부 3학년 때(1997년)로 기억한다.

나의 스승이었던 장성식교수가 존 패턴(John Patton)의 Pastoral Care In Context 번역 원고를 가지고 강의를 하였을 때 나는 그의 학생이었다. 그 때 그 번역본의 오타를 찾기도 하고 시험을 보기도 하였다. 그 때의 학점이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성식교수는 미국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에서 이 책이 출판되기 전 원고로 패턴에게 직접 배웠다. 장성식교수는 그 당시 한국교회는 목회적 상담이나 돌봄이 정착되지 않았기에 이 책을 번역하는데 적절한 용어를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 이후 2000년도에 평신도목회 연구소장인 서병채 목사를 만났다. 그는 멜빈 스타인브런 박사의 [목회 혼자서 할 수 있나?]라는 책을 나에게 소개하였다. 그 책에서 나는 멜빈의 아이디어를 발견하였다. 멜빈은 목회적돌봄이라는 넓은 범위의 영역을 심플하게 정리하였다.

바로 PACE이다. 멜빈은 목회적돌봄(또는 양육)을 안수받은 목사들이 자신들의 전유물로 알고 왔던 목회를 평신도에게 나누어 공유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멜빈은 이것을 제2의 종교개혁이라고도 주장하였다.

또한 장성식교수는 번역본(Pastoral Care In Context) 서문에서 패턴의 저서의 특징 중 하나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목회적돌봄은 목회자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교회전체의 역할이다. 목사 중심의 돌봄에서 교회에 속한 모든사람(평신도를 포함)들의 돌봄이다.” 라고 하였다.

나는 모든 성도들이 ‘상호 목회적돌봄’을 할 수 있도록 심플하고 강력한 툴을 멜빈이 제시하였다고 본다.

여기에서 ‘상호 목회적 돌봄’ 이라는 말은 폴 스티븐스의 [평신도 신학]에서 ‘상호 의존적 목회’라는 용어에서 배웠다. 그리고 패턴은 그것을 ‘공동체적 돌봄과 상황’이라고 말하였다. 이 책의 중심적인 신학적 고백 또는 논제는 “하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관계를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듣고 기억하시고, 사람들과의 개별적인 관계로 부르시는 창조를 통하여 관계를 지속하신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억 안에 있는 존재이기에, 인간의 돌봄과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목회상담학을 가르치는 김기철교수는 [장신논단, Vol. 49 No.1]에서 ‘상호 주관적 목회돌봄’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러므로 목회적 돌봄은 피상적이거나 일방적인 사역이 아니라 상호 소통되는 관계성과 더블어 교회공동체의 창조적인 역동성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다음 장에서는 John Patton의 저서에서 목회적 돌봄을 위한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인 “기억되고 기억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