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목회적 돌봄에 있어서 “기억되고 기억하는 것”

존 패턴(John Patton)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공동체인 멤버(Member)로 만드셨다고 본다. 그러므로 공동체와 돌봄은

분명히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충분한 관계로 이끌어가는 것은 기억이다. 기억됨(Remembered)은 Re-member(재구성)를 의미한다. 그것은 몸체를 재배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기억(Remember)의 반대는 망각(forget)이 아니라 해체(Dis-member)라고 한다. 다시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창조공동체로 한 공동체가 되었는데,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해체)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자신이 약속하신 언약을 스스로 기억하심으로 인해 인간을 구속하시고자 타락한 인간을 재구성(Re-member)하기로 하였다. 궁극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간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히 회복시키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약속한 말씀을 기억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떠나온 곳을 망각할 때 사실 우리는 해체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돌볼수 있다. 내가 기억하기 때문에, 나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기념(고린도전서11:23-25)하는 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내가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더욱 힘이 생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기억함을 통하여 그들에게 돌봄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er)의 말을 인용하면, 돌봄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오히려 우리의 유한함과 덧없음이 돌봄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이데거는 목회적돌봄을 베푸는 사람에게 있어서 돌봄은 우리가 느끼거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이상의 것임을 상기시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실존의 기본이며, 그 자체가 돌봄이라고 한다.

나는 목회적돌봄과 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목회적돌봄은 재구성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웃을 기억하고 또 나 자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기적일지는 몰라도 먼저 하나님과 나 자신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이 확립되어질 때, 부족하지만 내 이웃을 돌볼 수 있다. 반면에 나의 한계성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때 돌봄이 효과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판단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성장과 태도를 위해 ‘알찬 나’(하나님 형상성 회복)가 되도록 나의 인생을 디자인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하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 하이데거(Martin Heideger)가 말하듯이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것’이다. 인간생활에서 돌봄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돌봄은 인간관계의 고통스러운 부분과 만족스러운 부분을 다루고 있다.

돌봄은 신학, 철학, 윤리학 등의 관점에서 인간이 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때문에 목회적돌봄과 인문학의 연관성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Patton의 주장대로 우리가 재구성된 믿음의 공동체라고 한다면 돌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의 하나는 개개인의 목회적돌봄의 행위자가 핵심이 아니라 공동체에 의해 주어진 돌봄이라는 사실에 목회적돌봄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폴 스티븐슨은 그것을 ‘상호 의존적 목회’로 정의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우주의 에너지를 믿음의 공동체를 통해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내가 기억하고 그분께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럼으로서 자기를 돌보는 것과 이웃을 병행해서 돌보는(상호 의존적 돌봄)능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