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알찬 나’를 위한 목회적돌봄 사역

먼저 베드로에게 ‘네 양을 치라’ 라는 주님의 대헌장은 ‘알찬 나’를 만들어가는 대헌장이다.

목회적돌봄, 즉 나에게 맡겨진 양을 위해 돌본다는 것은 동시에 나 자신을 돌보는 사역이다 .

이것은 일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라이프디자인과 같은 것이다.

나 자신을 돌볼 줄 알아야 타인도 돌볼 수 있는 것이다. 목회적돌봄은 자기개발 이상이다.

시중에 있는 대부분의 자기개발서는 자신의 성과를 돌출하기 위한 자기중심적인 세계관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물론 몇몇 개발서에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의 세계관은 자기 자신이 성공해서 남을 돕는 삶을 사는 것이 자기개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이게도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신다.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신다. 기도하기도 힘든 피폐한 삶을 사는 현실에서 남을 위한 헌신은 언감생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양을 돌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를 돌보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중심에서 타자를 향해 사역을 하는 것 같지만, 온 우주만물이 나를 위해 존재하고 나를 돌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맡겨진 양을 돌보기로 작정한 이상 온 우주만물이 나를 돌보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즉 목회적돌봄 사역은 ‘알찬 나’를 만들어 가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은 나로 머물지 않고 나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양을 돌보는 무리끼리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성장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것은 모이는 교회 뿐만 아니라 흩어진 교회에서 강력하게 발전시키신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 할 수록 목회적돌봄 사역은 더욱 필요로 할 것이다. 심적스트레스가 심해지는 불안감, 자존감, 뒤쳐짐 등 시대가 발전할 수록 낙오자로 여겨지는 영혼들은 날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목회적돌봄 사역은 타인을 돌보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곧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성장 및 자기돌봄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돌봄인문학’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목회적돌봄과 인문학의 줄임말이다. 우리는 앞으로 인문학을 통해 많은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AI가 빠른 답을 줄 것이지만 어떤 것은 답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럴 때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 안내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떤 학문도 답을 주지 못할 때, 바울이 그랬듯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 분을 만남으로써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안내자는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을 탐구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또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알찬 나’는 진리를 탐구하는 자이다.